자기다움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비교'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타자와의 비교, 더 정확히 말하면 ‘차이’를 통해 우리는 자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파티가 즐거운 외향적 인싸들 틈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어쩔 수 없는 내향인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처럼.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나가는 과정도 비슷하다. 故 이어령 교수가 <젊음의 탄생>에서 스파게티와 국수를 들어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다. 두 음식에서 외양으로 보이는 가장 큰 차이는 '국물'이 있냐, 없냐다. 스파게티는 납작한 접시에 담기고, 국수는 볼이 깊은 사발에 담기는 이유다. 이처럼 서구권 음식 문화는 국물이 없는 형태가 많고, 우리네 음식은 기본적으로 ‘탕’을 특성으로 한다. 탕 문화는 ‘불필요한 것, 부수적인 것, 잉여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고 포섭한다. 갖가지 야채와 양념의 ‘섞임’에서 오는 다양한 풍미를 즐기는 우리 문화 속에서 ‘국물도 없다’는 말이 욕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국물문화’가 지니는 위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국물을 필두로 한 우리 음식 문화의 전통 속에서 나는 한국적 오리지널리티의 흔적을 읽는다. 바로 이질적인 것들을 섞고, 묶고, 결합하는 힘, ‘합력(合力)’이다.
등장 인물들이 서로를 죽고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데스게임’ 장르는 예전부터 있었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 놀이 문화와 흡인력 있는 스토리가 섞이니 넷플릭스 세계 1위를 찍은 <오징어게임>이 나올 수 있었다. BTS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멤버들이 가진 다양한 매력의 혼합에서 나오는 파급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았지만, 라이브로 노래하면서 단체 퍼포먼스도 수준급으로 잘하고, 팬들과의 소통까지 적극적인 아티스트 그룹은 BTS가 유일했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의 극명한 차이를 ‘벌레’와 결합하는 연출을 통해, 해학과 기괴함의 수위를 아슬하게 넘나들며 영화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대단한 문화적 성취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일상에서도 합력의 발견은 계속된다. 학구열 높은 한국인들은 커피와 담소를 즐기라고 만들어 둔 카페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일한다. 카페의 독서실화다. 암묵적 침묵의 공간에 들어오면, 대화를 나누러 온 사람들은 눈치 보며 말소리를 죽이기도 한다. 합의 민족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아예 그런 목적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버렸다. ‘스터디카페’의 등장이다.
흔히들 현대를 ‘뷰카(VUCA)’시대라고 부른다. VUCA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약자다. 쉽게 말해 애매모호한 시대다. 다행인건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의 ‘합력’은 찐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이질적인 것들을 배척하는 태도가 아니라, 포용하고 섞어보는 과정에서 새로움이 잉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력은 혼합이라는 전통 문화적 기반 위에 성장해온 한국인들이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소양이자,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요즘에 더욱 주목받을 새로운 시대 정신이 될 것이다. 잘 섞어야 우뚝 솟는다. 오징어게임이 그랬고 BTS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