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세렌디피티를 기르는 법

 

평범한 풍경, 현상, 행동에 숨어 있는 씨앗이나 중대한 의미를 '깨닫는' 능력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세렌디피티의 촉을 날카롭게 세우고 주변을 잘 관찰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영감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커피점 알바생에게서도 말이다.

 

출근길 아침, 신사역 마노핀 매장에 자주 갔었다. 아침으로 먹을 빵과 커피를 사기 위해서였다. 의식처럼, 습관처럼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들러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안면을 튼 알바생이 내가 주문을 하기도 전에 다 안다는 듯 메뉴를 확인해왔다. 한술 더 떠 매장에 닿기도 전에 멀리서 나를 알아본 알바생이 무언의 아이컨택 후, 주문을 넣고 빵을 데우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뭔가 케어 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다른 파트너에게 주문을 전달하고, 신속 정확하게 계산 후 꼼꼼히 포장했다. 기본적인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니 절로 신뢰가 생겼다. 간혹 내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오늘은 일찍 출근하시네요?"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아쉬운건(?) 그의 특별한 케어를 받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것.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즐겨 찾는 메뉴를 다 외웠는지, 한 명 한 명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다 해당 타임에 다른 알바생이 근무를 하고 있으면, 그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일일이 메뉴를 말해야 했고, 심지어 주문을 잘못 알아들은 알바생이 잘못된 메뉴를 내놨을 땐 살짝 짜증도 났다. 불편함이 클수록 그의 존재감도 컸다. 그의 알바 생활이 끝나갈 때쯤, 다른 고객으로부터 초콜릿을 선물로 받는 장면도 직접 목격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알바일 뿐인데, 고객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선물까지 받았다. 사소한 일도 완벽하게 해내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 어떤 명사보다도 당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인물이 바로 그 알바생이었다.

 

내가 하는 홍보 일도 어찌보면 관계를 다루는 일이다. 기자들마다 성향이 다르고, 커뮤니케이션 스타일도 천차만별이다. 그들의 특성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기업을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 마초적인 캐릭터로 소위 갑의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기자가 있었다. 두 번째로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 지난번 미팅 때 알게 된 그의 딸 안부를 자연스럽게 슬쩍 물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나도 모르게 외워졌는데, 그때 커지던 그의 동공을 잊을 수 없다. 작은 관심이 모종의 신뢰를 준 것인지, 그는 나에게 종종 업계 동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이직 자리를 제의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요청하는 자료들을 필요할 때 잘 챙겨줬던 점도 한 몫 했겠지만.

 

이 두 건의 일상 경험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관심의 역학이다. 고객 감동의 포인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관심에서 올 수 있다는 것. 지나친 관심은 오지랖이 될 수 있고 오늘날 지양해야 할 처세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 얻은 적정 관심은 연결의 기쁨을 전해준다는 것.

 

일상을 성찰하다 보면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추출할 수 있다. 일상이 바로 세렌디피티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깨닫는 힘, 세렌디피티를 기를 수 있을까? 세렌디피티를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가지 습관을 정리해봤다.

 

1) 메모, 사진 촬영 등을 통해 현상을 포착하고 사고하는 습관을 들인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는 어렵다. 수집된 자료나 데이터들이 상상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자료를 쌓아두고, 집요하게 생각을 확장하고 연결하다보면 독특한 시각이나 인사이트가 자랄 수 있다.

 

2) 경험이나 행동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습관을 들인다.

굳이 어려운 책을 찾을 필요가 없다. 직장, 학교, 관계 등 내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일상에 보석이 숨어 있다. 같은 경험일지라도 나만의 고유한 생각과 느낌을 더해보면 경험의 질감이 달라질 수 있다. 

 

3)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습관을 들인다.

하나의 현상은 단선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수많은 원인과 결과, 수많은 요인들이 다층적으로 뭉쳐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의미가 도출되는 이유다. 의미의 변주를 통해 더욱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생각을 선물 받을 수 있다.

 

우리 삶은 별볼일 없는 일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이 특별할 순 없지만, 세렌디피티를 장착하면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볼 수는 있다. 그게 바로 세렌디피티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