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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눈썰미도 재능이다

나에겐 괴상한 능력이 있다.

 

한번 본 얼굴은 기똥차게 기억하고, 군중 속에서도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렇게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사람들은 다양하다. 몇 만 명이 집결했던 광화문 광장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찾아냈고, 9호선 퇴근길 지옥철에서 대학 동기와 재회했고, 이전 직장의 상사도 발견했다(모른척했다). 뿐만 아니다. 페이스북으로 팔로우하던 오피니언 리더, 업계 선배들도 포착했다. 서점에서 책을 읽다 휙 고개를 든 찰나의 순간이었다.  

 

처음엔 다들 그런 줄 알았다. 직장 동료와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말했다. 

 

 

"그것도 재능이야"

재능이라고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으쓱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이 잔재능으로 이직의 기회까지 얻었더랬다. 

 

주말이면 자주 가던 카페에서였다. 형용할 수 없지만 '익숙한' 느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익숙함의 근거를 찾아 뇌를 열심히 굴려봤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시던 분이었고, 그분이 쓰신 몇 개의 칼럼에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몇년도 더 지났고, 콘텐츠에서 그분의 얼굴을 본지도 가물가물하지만 뭔가 익숙했다. 감을 믿고 용기를 냈다.

 

 

"혹시 000 대표님 맞으실까요?"

역시나 내가 알고 있던 그 대표님이 맞았다. 대표님께서는 당시 주니어였던 나에게 커리어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얼마 후 입사 제의까지 해주셨다. 이 날의 인연은 아직까지도 서로에게 매우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눈썰미의 다른 이름은 한마디로 정보에 대한 '예민함'인 것 같다.

 

꼭 그럴 필요가 없을때조차 너무 많은 정보를 감지해버린다.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포착하고 혼자 걱정하는가 하면, 회의실 밖에서도 회의실 내부의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내고 묻는다. 그분 퇴사하시냐고. 어찌 알았냐며 놀라는 팀장님에게 그저 웃음만 지었다.

 

눈썰미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영어사전의 정의가 참 마음에 든다.

 

 

"sharp eyes for learning things"

무언가를 빠르게 캐치할 줄 아는 안목. 이렇게 다시 보니 재능의 영역에 넣어도 될 것 같다.

 

이 재능이 비기가 될 날을 꿈꾸며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겠다. 더 예리하게, 더 샤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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