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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심심함을 심심하지 않게

스마트폰 하나면 도파민을 자극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즐길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심심함'일지도 모른다. 걸어 다니는 순간에도, 커피를 기다리는 잠깐의 순간에도 공백은 참을 수 없는 무엇이 된다. 습관처럼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보는 이유다. 

 

심심함의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지루한 상태'로 나온다. 김소연 시인은 심심함을 '가장 천진한 상태의 외로움'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피하고만 싶은 이 지루함과 외로움에 의외로 반전의 미학이 숨어 있다.

 

심심함은 사람을 더 깊어지게 만든다. 심심함은 관조하고 사색하는 삶의 필요조건이다. 심심함이 없다면, 느릿함 속에서 숙성되는 삶의 의미를 마주할 수 없다. 자신의 행복에 주의를 기울일 느긋한 여유도 신기루같이 사라진다. 바쁠 때는 자아를 관조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을 잃기 마련이니까.

 

대학생 시절 홀로 떠난 첫 해외여행길. 비용을 아끼려다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환승 대기 시간만 10시간. 밤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러시아가 왠지 낯설고 무서웠던 터라 공항 밖으로 나가기도 애매했다. 설상가상으로 폰마저 고장 났던 상황이라 텅 빈 공항의 정적과 느릿한 시간이 나를 덮쳐왔다. 심심함과 정면으로 싸워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여유롭고 성숙했던 것도 같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게 보기도 했고,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가지고 간 책을 열심히 읽기도 했다. 그것마저 다 읽어서 지루해졌을 때는 노트 한 권을 펼쳐 과거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 계획도 세우면서 이것저것 끄적이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트 하나에서 나의 세계는 무한했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놀랍게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탑승 시간이었다. 사색만으로도 한껏 풍요로웠던 몰입의 시간들이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요즘의 나는 오히려 심심할 때면 스마트폰에 많이 의존했던 것 같다. 습관적으로 SNS를 보거나 굳이 안봐도 될 온갖 콘텐츠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쓴 느낌이랄까. 눈에 피로감이 몰려올 때면 아차 싶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심심함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심심함을 문득 자각 할때면 이것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용해볼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한정된 주의집중력을 무의식적으로 낭비할 것인지, 삶을 돌아보고 향유하는 사색의 시간으로 활용할 것인지는 의지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환경 설정과 습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오마카세 글쓰기 모임이 좋은 출발점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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